2020년을 정리하고, 2021년을 맞이하는 글
2020년의 연말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연말같지 않았다. 일 년을 주기로 움직였던 학생 때나 회사의 근로자일 때와는 처한 상황이 다르기도 했고, 코로나로 인한 고요함도 한 몫했던 것 같다. 새롭게 회사를 만들고 멤버들과 align되어 달려나갈 준비를 마친 시점이 11월 정도였고, 한창 KLUE 프로젝트가 달리고 있던 시기가 12월이었으니 12월 말이 연말보다는 월말의 느낌이었다. 게다가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되면서 연말파티를 하며 사람들과 강제로라도 일년을 회고하고 마무리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따로 시간을 내서 마무리하기에는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휴식이 더 필요했기 때문에 "나의 연말은 이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는 시점으로 유예한다!"고 자기 합리화를 하며 연말과 연초를 보냈다.
그런데 떡하니 회고의 다짐의 주제를 담을 법한 이 글은 대체 무엇이냐. 작년 상반기의 프로젝트가 완료되고 한 템포 쉬어가던 4월을 제외하고 하반기를 자의반 타의반으로 쉴틈없이 달려왔던지라 번아웃으로 인한 슬럼프가 오기 시작했다. 나의 번아웃 극복 노하우 중의 하나로 당장 해야할 것 같은 일을 머리에서 지우고, 그 일을 해야하는 이유를 정리하는 것이 있다. 왜 나는 이 시간에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이해시키고 정말 해야하는 일과 하면 좋을 일을 구분하면 현재의 내가 짊어진 무게를 덜어낼 수 있고, 꼭 짊어져야 할 무게를 감당할 의지를 다잡을 수 있어서 자연스럽게 슬럼프가 극복된다. 지금 정리하는 글은, 그래서 새해부터 찾아온 번아웃 극복의 일환이다.
최근에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가장 자주 들었던 질문은, “그래서 어쩌다가 업스테이지에 합류하게 된거야?” 이다. 물어보는 사람에 따라 여러 버전으로 대답을 했던 것 같다. 사실이 아닌 답변은 없었지만, 진짜 나의 생각을 꾹꾹 담아 전달해본 적도 없던 것 같다.
나는 사람들의 삶에 비록 미약할지라도, 긍정적인 변화를 불어넣고 싶다. 그리고 그 변화는 내가 살아오면서 느꼈던 불만족스러움의 영역을 만족스러움의 영역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사람들 개개인의 독창성이 존중받는 사회를 원한다. 이 때문에 똑똑함을 판단하는 기준을 시험을 잘 보는 것 정도로 규정하는 우리나라의 교육제도와 개인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없이 일부의 특성만으로 개인을 규정하고 판단하는 사회적 편견과 혐오를 개선시키고 싶었다.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를 개선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할까? 내가 교육에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똑똑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자리에 앉아서 책에 적힌 개념을 외우거나 이해해서 시험문제를 실수없이 잘 풀고 맞추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의 대부분을 학원이나 학교에서 보내고 정작 인생에서 중요한 "나라는 사람을 다각도에서 이해하기 위해 세상을 경험하는 시간"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왜 다들 학원과 학교에서 오랜 시간을 보낼까? 그 것은 입시에서 뒤쳐지면 망할 것이라는 어른들의 과도한 두려움과 양극화로 인한 불공정한 사회라는 사실 혹은 인식 때문이다. 개인의 노력으로는 더 이상 좋은 조건의 환경을 극복할 수 없는 사회라는 생각이 강해질수록, 공정해보이는 수능을 통한 학벌 사다리를 타기 위해 사교육시장은 더욱 치열하게 불타오를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그렇게 좋은 수저를 물고 태어난 편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회가 얼만큼 불공정한지, 부모님들이 느끼는 두려움은 정당한 것인지 직접 경험하고 나의 인생이 저물어갈 때쯤에야 내가 한국 교육에서 문제라고 느끼는 가설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답을 찾는다면, 주저없이 학교를 세워서 나의 경험 혹은 유사한 경험을 했던 분들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다.
사회적 편견과 혐오는 왜 문제이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편견과 혐오의 근거가 되는 속성이 "나"를 구성하는 특징이고 이는 나의 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거나 존중받아야 마땅할 선택이기 때문이다. 나의 성별은 여자다. 이 속성은 나의 의지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놀랍게도 500여년 전에는 어찌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했었다). 성적지향성, 장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이민 혹은 정치적 성향은 나의 선택과 생각의 영역이지 남에게 비난받아야할 속성은 아니다. 어떻게 한 사람을 겉으로 드러날 뿐인 얕은 특성만으로 많은 부분을 규정짓고 호와 불호를 가볍게 판단해버릴 수 있는걸까.
교육과는 다르게 사회적 편견과 혐오는 내가 가진 능력으로 해결하기 위해 더 빠른 시점에 도전해볼 가치가 있는 문제라고 여겨졌다. 표현을 하는 행위 자체는 어찌할 수 없더라도 (일정부분 표현의 자유와도 맞물려 있는 영역이기도 하고) 적어도 그 피해가 피해자에게까지는 닿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조그맣게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했고, 그 일이 계기가 되어 다양한 사람들과 기회를 마주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에 데이터셋을 만들고 연구로서의 가치를 만드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더 큰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모으는 것이 내가 아니더라도 상관없었고, 그저 나와 방향이 같은 사람들과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싶었다. 그 마음이 원익님, 준범님, 성준님을 거쳐 루시, 활석님, 그리고 성킴까지 만나게 해주었고 업스테이지의 합류를 결정하게 해주었다. 결과적으로 Making AI Beneficial 이라는 넓은 비전 아래에서 하고 싶은 방향,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방향의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8월 어느 날, 업스테이지(그 때는 너울이었던…)의 합류를 결정짓고 내가 이 곳에서 배우고 싶고, 이 곳을 가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이유를 적어둔 일기가 있었는데 대부분이 실현되고 있다.
2021년에는 이전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의 성장을 꿈꾸고 싶다. 우선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 soft skill 측면에서 내가 생각하는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란 겸손하면서 도전하기를 멈추지 않고, 사람을 이해하는 사람이다. hard skill 측면에서는 자신만의 엣지를 가진 사람이다. 그 영역이 기술일 수도 있겠지만 매니징이나 멘토링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내용을, 설사 그 내용이 아플지라도 부드럽고 주저없이 전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보다 스스로에게 떳떳한 사람이 되고도 싶다. 하지만 가장 되고 싶은 모습은, 많은 것들에 익숙해져서 여유가 있는 사람이다. 나의 인생에 slack을 두고 싶고, 그 시간에 나를 포함해서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살피고 돌보고 싶다.
그 밖에도 2021년에는 보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길 바라고 마음편히 운동하고 여행다니며 친구들과 수다떨 수 있는 날이 오길 소망한다.